미국의 감동실화 릭 부자 이야기를 아세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를 앓고 태어난 릭. 병원에서는 평생 식물인간처럼 살 것이라고 했지만 아버지 딕은 좌절하지 않고, 릭을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어느 날 릭이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달리기를 시작한 딕은 릭을 휠체어에 태워 마라톤대회에 출전합니다. 몇 십번의 도전과 실패 끝에 릭부자는 보스턴마라톤대회 24년 연속 완주, 달리기와 저전거로 6,000km 미국 대륙 횡단, 철인 3종 경기 6번 완주라는 대단한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달리고 있을 때만은 장애가 사라진다는 릭.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없이는 할 수 없었어요.”

뒤이어 아버지도 다음 같이 말했다.

“네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단다.”

미국에 릭부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은총부자’가 있습니다. 지난 16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은총부자가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했습니다. 비록 ‘꼴찌’로 결승점을 통과하긴 했지만 이들 부자는 당당히 성공의 매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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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아들을 태워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 5시간 20분이 걸려 '꼴찌'로 들어왔다. 골인점을 통과한 후 은총이 아빠는 "은총이를 생각하며, 은총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희귀난치병 보험 적용 안돼, 수술비와 치료비 감담 못해

은총아빠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6년, 희귀난치병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 의료지원 확대를 위해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국토대장정에 나서 희귀난치병 환아들과 부모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희귀난치병 환아들이 사는 강릉, 대구, 부산, 군산, 천안, 수원, 성남, 부천, 서울 등을 차례로 방문했고, 최종 목적지인 보건복지부를 방문해 희귀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몇 개 질환이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소기의 결실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5천여 개의 희귀난치병 중 130여개 질환만 의료혜택이 가능하니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 자체가 현대 의학으로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그저 완치보다는 병의 퇴행을 최대한 늦추는 현상유지 정도의 치료만 하고 있을 뿐이지요.

완전한 치료 방법이 없어 완치를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은총이 아빠와 엄마는 실낱같은 희망을 절대 놓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합병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주위의 차가운 시선 없이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얼굴의 검붉은 반점을 없애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천문학적인 치료비용에 주저앉고 말았죠. 현재 치료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매번 돈이 없어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픕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주눅 들고,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은총부자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은총이와 같이 장애를 앓고 있는 환아들에게 ‘너희도 우리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세상의 편견과 싸우면서 이 땅의 희귀난치병 환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철인 3종 경기 출전하고 싶지만... 자전거 특수제작 비용 없어

이제는 철인 3종 경기라는 극한의 운동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지훈씨는 지난 몇 년 간 마라톤, 수영, 자전거를 연마하고 있습니다. 은총이와 함께 경기에 나가면 마라톤은 지금과 같이 휠체어에 태울 것이고, 수영은 보트에, 자전거는 특수 제작해 출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자전거 특수제작 비용이 많이 들거니와 설계가 쉽지 않아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훈씨는 자전거만 완성된다면 올 가을, 은총이와 함께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역시 돈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은총부자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 합니다.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아이가 어느덧 8살이 됐고, 은총이 부모는 이 모든 게 은총이를 응원해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이라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 땅 모든 희귀난치병 환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꼭 도전할 거라 합니다.

릭 부자가 은총부자에게 희망이 줬듯, 은총부자도 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거라 믿습니다

은총이(8세)는 스터지 웨버 증후군과 크리펠 트레노우네이 웨버 증후군, 오타모반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세 개나 동시에 앓고 있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 세가지를 동시에 앓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은총이 단 한 명뿐이라고 합니다. 은총이가 태어나고 희귀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았을 당시 병원에서는 “길어야 6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판정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은총이를 위해 온 몸이 부서져라 달리고 또 달리는 아빠의 힘으로 은총이는 오늘도 힘겨운 병마를 이겨내며 웃고 있습니다.

■도움주실 분(은총이 아빠가 철인 3종 경기에 필요한 자전거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신한은행 110-171-914660(박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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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가진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게 목소리가 있더군요. 아나운서 생활을 했으니 제가 가진 목소리로 책을 읽고싶어도 읽지못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을 들려주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각장애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시각장애인 돕고 싶어 책 녹음봉사 시작!





올해 61세인 채규화씨. 전직 KBS 아나운서 출신인 채씨는 평소 보람 된 일을 하고 싶었고, 아나운서라는 장점을 살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 녹음봉사를 시작했다.

올해로 녹음봉사를 시작한지 6년이 되었다. 아나운서 재직 당시부터 녹음봉사를 한 그였지만 퇴직한 지난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녹음봉사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녹음된 책은 시각장애인협회에 전달, 천여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지자체의 시정소식지는 매달 빠짐없이 녹음한다고. 시각장애인들에게 관내 뉴스를 들려줌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알 권리와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녹음을 하는 동안에는 그냥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여 녹음한다.

책이 담고 있는 분위기와 책 속에 담긴 뜻을 목소리에 그대로 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음 후 다시 듣고 나서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녹음하기도 한다. 또한 한 번 녹음을 시작하면 1~2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3~4시간 동안 계속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다.


“3~4시간 동안 녹음하다 보면 힘들 때도 있어요. 목도 한계가 있고... 그래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가진 녹음장비와 녹음실이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녹음 후 들어보면 잡음도 많이 있고..."
 
"앞으로 지금보다 조금 나은 녹음실에서 좋은 장비를 통해 장애 체험 극복 등 장애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책을 많이 녹음해 전달하고 싶은 게 제 작은 꿈입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진 목소리로 다른 이를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채씨.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장 나는 녹음기를 고쳐가면서 쓰고는 있지만, 오늘도  목을 가다듬고 책을 읽고 녹음을 한다.


목소리로 사랑을 전하는 녹음자원 봉사, 그 목소리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가 아닐까?


좋은 녹음장비와 녹음실에서 장애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녹음해 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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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트로트에 엉덩이가 씰룩!!

꼬맹이들의 앙증맞은 재롱잔치^^


꼬맹이 신사숙녀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재롱
잔치가 열렸습니다.^^

신나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째만한 엉덩이를
요리조리 씰룩거리는 녀석들의 앙증스러운
모습에 모두들 웃음보따리가 터졌습니다^^

그 웃음, 함께 한 번 웃어보실래요?



           꼬맹이들의 앙증맞은 재롱잔치 함께 보실래요?^^




우리 꼬맹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재롱잔치를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습니다.^^
응애~ 하고 태어난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엄마 아빠에게
큰 웃음을 주니, 그 기특한 모습 바라보며 흐뭇한 마음과 큰 행복이 밀려오더군요.

아이들를 키우다 보면 힘들때도 많지만, 그리고 어린이집 보내고 유치원 보낼 때
 잘 적응할까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재롱잔치 보면서 그동안의 힘듦을
다 잊을수 있었습니다. 이런게 아이를 키우는 재미고 행복인가 아닌가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행복을 만나지만, 아이가 커 이렇게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잔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 행복이 이 세상 그 어떤 행복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되어서 아주 많은 행복을 만나지만, 재롱잔치는 특별한 행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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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내년 계획서를 내고 검토가 끝났습니다.

휴~매년 계획서를 내지만, 계획서라는 것 쓸 때
마다 머리가 아픕니다.

계획서 끝에는 늘 이 말을 적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역시 늘 같은 말씀을 합니다.


“열심히는 기본이고,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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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회사 영업부 직원들은 세일즈를 위해 외근을 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지만, 회사 매출을 위해 가장 고생하는 부서입니다.

끙~ 잘해야 한다는 말, 이 말 만큼 직장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잘해야 한다.’는 말에 심리적 부담감을 갖는 것은, 잘하지 못하면 언제가 됐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해야겠지요. 열심히 잘 해서 내년에도 올해처럼 연말에 모든 직원이 기쁜 마음으로 한 해를 정리하고, 또 그 힘으로 내 후년에도 계속해서 회사도 발전하고 그에 따라 월급도 오르고 해야겠지요.


올 한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직원들이 열심히 잘 해서 회사 설립 15년 만에 최고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 최대 매출을 올린 것은 사장님과 실장님을 비롯해 20명 모든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와 싸우고, 한 겨울 시린 손 녹일 틈 없이 매출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회사 영업부! 한 해동안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그 중에서도 매출을 담당하고 있는 영업부서 7분의 땀방울은 우리 회사가 매출을 크게 올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장마에도, 태풍에도, 그리고 한 겨울 시린 손을 녹을 틈도 없이 외근을 하면서 회사 매출을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 한 그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따뜻한 온풍기가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주로 근무하는 저로서는 그렇게 매일 매일 무더위와 싸우고, 추위와 싸우면서 회사 매출을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업부서 직원들은 매번 고객들과 부딪히는 부서인지라 하루 중 한두 번 이상은 꼭 얼굴에 그늘이 지곤 했습니다. 심한 경우 고객들로부터 인격적인 모독까지 받아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그렇게 매일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또 회사 안에서는 매출부서라는 이유로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더 잘해야 함을 늘 주문 받았습니다.


또한 그 달 실적이 좋지 않으면 심한 질책과 함께 다음 달에 어떻게 매출을 더 올릴 것인가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2008년도에 매출 예상액을 회사에 제시했지만, 검토단계에서 더 올려잡으라는 회사 지시도 떨어졌습니다. 아마 내년에도 무척이나 고생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생도 심하고 스트레스도 많아서인지 매출부서의 경우 다른 부서보다 퇴근 후에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출부서원끼리 모여 하루에 쌓인 마음의 상처와 ‘매출, 매출’ 하는 회사에 대한 불만들을 술 한 잔으로 달랬던 거지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에 잠시 회의를 하고는 또 다시 세일즈맨의 현장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2007년도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 이 시간에도 2007년 매출을 한 단계라도 올리기 위해 매출부서원들은 아침 일찍부터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세일즈맨들, 우리 영업부서 직원분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고생했다는, 그리고 참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영업부 화이팅!!”


그리고 우리 회사 영업부서 직원분들 외에도 대한민국 모든 세일즈맨들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직장생활에서 모든 부서가 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발벗고 뛰어야하는 영업부서가 제일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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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가마와 달리 전통 가마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죠."
 

"같은 흙과 유약을 쓰고, 같은 가마에 넣었어
도 불을 어느 방향에서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서 빛깔이 다르고 무늬가 달라져요."


"이 가마속에서 언젠가는 영혼이 담긴 도자기,
단 한 개만이라도 만들고 싶어요"


어느 가난한 젊은 도예가의 꿈, "내 삶에서 영혼이 깃든 도자기 단 하나만이라도 만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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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로 타오르는 불빛! 빨갛지도 노랗지도 않고 물처럼 투명하다. 은은한 멋이 배어나는 이 색감을 얻기 위해 가마에 장작을 넣은 뒤 꼬박 20여 시간을 그는 기다린다. 그 시간동안 옆에는 담배꽁초가 쌓인다. 장작 하나를 더 넣어야 하나, 넣지 말아야 하나? 그 하나를 고민하는 데, 그의 옆에는 이렇게 담배꽁초가 무수히 쌓인다. 


젊은 도예가 진범석씨(38). 오늘도 그는 작업이 수월한 가스 가마 대신, 꼬박 20시간을 가마 옆에서 물 한 모금으로 버티며 지켜야 하는 전통 가마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는다.


 “도자기는 만든다고 하지 않아요. 빚는다고 하지요. 그만큼 영혼이 담긴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났지만 영혼의 근처에도 못 갔고, 정성이라는 단어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좋은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 제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탓인가 봅니다.”


집안 권유로 회계학과 진학, 하지만 학업 중도 포기하고 도예의 길로 들어서다.

  

집안 어르신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회계학과를 진학했지만,  결국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 길로 문경으로 가 그곳에서 도자기 명인인 월파 이정환 선생님을 만나 도예의 길을 걷기 시작, 8년 째 수많은 도자기를 구웠지만 여전히 그에게 있어 자신이 만든 도자기는 세상에 내놓기 부끄럽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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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마 이름은 서천동요(西川東窯)이다. ‘서쪽에 있는 물과 동쪽에 있는 흙이 만나 불과 동화 된다’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이 가마 이름이 서천동요는 아니었다. 이 가마 이름을 짓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도자기를 빚는 가마의 이름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실력이 이름을 알릴만큼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섣불리 이름을 지을 수 없었다 한다.


“이번 여름에도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몇 백 작품을 모두 깨버렸죠. 두 달간 담배 값도 없어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되겠죠? 언젠가는 꼭 영혼이 깃든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게 제 꿈이에요. 제가 죽기 전에 이런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눈물을 쏟을 만큼 눈이 매워도 가마를 떠나지 못하는 것, 미치지 않고서는 영혼의 도자기를 만들 수 없다면서 하루 빨리 자신이 미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진범석씨. 자신의 삶에서 언젠가는 단 하나라도 좋으니, ‘영혼의 깃든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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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 타오르는 가마의 불꽃과
그의 손길에서 ‘영혼의 깃든 도자기’가 이 세상에 탄생하기를 기도해 봅니다.그리고 우리
옛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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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장님은 ‘구두쇠’ 사장님!

아르바이트 돈도 조금만 주고..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중국 유학생이 많은 데, 과연 유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모 대학에서 중국 유학생을 만나 한국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뭐, 한국이 너무 좋대요^^ 근데, 아주 좋지 않은 기억도 있었습니다.-_-


한국에 유학 온 중국인 유학생, 양중하(좌) 학생과 경문(우) 학생. 이들이 좋은 기억으로 한국 생활을 마치고, 꿈인 '동시통역사'와 '한국어 선생님'이 꼭 되기를 바랍니다.^^


국어국문 2학년에 재학중인 양중하 학생은 “교수님도 좋고, 친구들도 잘 해주고...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고, 한국이 너무 좋다^^”며 한국 생활이 아주 즐겁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교통문화를 뽑았는데, 한국에서는 녹색 신호등이 켜지면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군요^^ 아마 무질서한 중국의 교통질서와는 정 반대로 나름대로 질서정연 한 광경이 인상에 많이 남았나 봅니다.


사실 그 말 듣고 이해가 좀 가기는 하더라고요^^ 저도 지난 여름에 회사 일로 중국에 갔었는데, 사실 저는 중국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양중하 학생과는 정 반대로 아무데서나 길을 건너고, 차들은 아예 차선도 없이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고... 아무튼 너무도 무질서한 교통질서가 제일 인상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만난 경문(국어국문ㆍ3) 학생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한국 친구들의 친절함 등 좋은 말을 하면서도, 좋지 않은 기억을 말하더군요. 아주 뜨끔한 말이었습니다.-_- 바로 아르바이트 할 때 사장님에 대한 안 좋은 기억, 그리고 차별과 이상한 시선 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경문 학생도 한국에 유학 온 후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중국어 과외도 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가 끝나도 돈을 제 때 안 주는 경우가 많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덜 받았다고-_- 또 여자 유학생이라고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기분 상하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_-

경문 학생이 이러더군요. “한국 사장님은 ‘구두쇠’ 사장님이에요”

에구, 솔직히 경문 학생이 그렇게 말할 때 제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뭐 이건 뭐라고 할 말이 없으니 원-_-
 
우리 유학생이나 동포들이 외국에 가서 이런 차별이나 불이익, 인권침해를 당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에 온 유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 분들에게 차별이나 불이익, 인권침해를 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교육인적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으로 유학 온 유학생이 3만2,557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들이 학업을 끝내면 다시 그들의 모국으로 돌아가겠죠. 이들이 다시 자기 조국으로 갔을 때 이런 나쁜 기억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할 수 있도록 더 잘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참, 경문 학생의 꿈은 ‘동시통역사’이고, 양중하 학생의 꿈은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그 꿈을 꼭 이루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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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었지만 ‘행복’ 찾았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삶!

장애인 돼서 행복?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죠?”


1급 시각장애인 권홍식씨.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은 행복하다'며 본명 대신 이름을 가명인 '권행복'으로 바꿨다.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죠? 하지만 전 시각장애인이 되고나서 더 행복해 졌어요. 몸이 힘든 것 보다 마음이 힘들면 더 고통스럽다고 하잖아요. 비록 몸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마음이 행복한 지금, 저는 무지 행복합니다.”


권홍식(38세)씨. 그는 지금 1급 시각장애인이다. 건강했던 권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건 5년 전. 평범한 회사원 시절,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던 권씨는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세상이 희뿌연 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겠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점점 상태는 악화됐고, 15번의 수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시각장애라는 장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권씨는 갑자기 닥친 불행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년여 동안 그는 세상과 등지고 방황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방황 끝에 생각을 바꿨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좌절을 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한 권씨는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보일 때 뭔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2005년부터 익산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안 보이는 만큼 더 노력하자’고 다짐 하면서 안마, 마사지, 지압, 양의학, 침술을 배우는데 온 땀을 흘렸다.


그렇게 2년 동안 새로운 삶에 도전했고, 올 2월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안마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행복 경락ㆍ안마 치료원’에서 경락과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 권씨는 앞으로 주말을 이용해 몸이 불편하지만 돈이 없어 병원치료도 못하는 분들에게 봉사안마를 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그 고마움의 조금이라도 다시 갚기 위해서라고.


'시력' 잃었지만 '행복' 찾은 아들 보며 그저 아들이 대견하고 행복하기만 한 어머니!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때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권행복씨. 맹아학교를 다니며 안마와 마사지 공부를 하면서 빼곡하게 써내려간 그의 노트다.  


권씨가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 권씨보다도 더 가슴 아팠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다. 하지만 이제 아프지 않단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잘 살아주니깐 어미입장으론 고맙지요. 이게 효도가 아니고 뭐겠어요”

“어머니 그런 소리마세요. 아들이 이렇게 아픈 것 자체가 불효죠.”

“그런 소리마라. 니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면 나는 세상 더 바랄 게 없어 ”


 아들이 시작장애인이 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는 어머니 윤앵순씨는 “장애를 딛고 어엿한 직업을 얻은 아들이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며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단다.


하지만 권씨는 “지금까지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건강까지 온전치 못해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애써 눈물을 삼켰고, 그런 아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던 어머니는 이야기 도중 자리를 피했다. 난, 그분들의 눈물이 아픔의 눈물이 아닌 행복의 눈물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자신의 원래 이름인 ‘권홍식’가 아닌 ‘권행복’으로 불러달라는 권행복씨. 비록 삶을 살아가는 데 등불이 되는 눈은 잃었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을 얻었다는 권씨를 만나며 행복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가진 능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에 있음을 아주 조금은 깨닫고 돌아왔다.


그의 이름대로 ‘행복’이 늘 그와 어머니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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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희용

 올해 나이 54세 석병오씨. 그는 농부이자 늦깍이 배움의 길로 들어선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아부지를 일찍 여의고 남의 집 살이 하면서 고생고생 하며 살았는데... 가난이 싫어 억척같이 일했는데... 이제 어려웠던 시절 지나고 나서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못 배운 게 한이 되더군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전북 군산시 회현면 용화마을에 사는 석병오씨. 올해 나이 54세. 학교 교문을 떠났어도 수십 년 전에 떠났을 나이지만, 그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다. 2004년 군산 YMCA 부설 평화중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올해 군산평화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내던 60-70년대는 우리나라 전체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그 또한 가난한 살림을 면치 못했고, 그 속에서 공부는 그리 오래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됐다. 더욱이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세는 더욱 기울어 어린 나이부터 남의 집 허드렛일 등을 하며 집 안 살림살이를 보태야 했다. 가난은 아무리 육신을 쉬지 않고 움직여도 더욱 조여 왔다. 하지만 땀 흘리는 사람에게 복이 찾아오듯 그에게도 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준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마을 형님 한 분이 이런 석씨를 안타깝게 여겨 얼마 되지는 않지만 논을 조금 떼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살림 밑천 삼아 젊은 시절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다. 이제는 논도 있고 소도 키우고... 하루 세 끼 밥걱정 안 할 정도 될 만큼의 살림이 되었지만, 그는 마음 속에는 늘 맺힌 것이 있었다. 바로 배우지 못한 깊은 한! 나이 들어 학교를 간다는 것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아내와 딸 등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지난 2004년 YMCA에서 운영하는 평화중학교에 입학했고, 올해는 중학교 졸업 후 다시 평화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모든 과목 재밌지만 영어는 정말 어렵다고^^ 학사모 쓰는 것이 그의 꿈!


그의 영어 노트. 모든 과목이 다 재밌는데, 영어는 제일 어렵단다.^^


모든 과목이 다 재밌다는 석씨. 하지만 영어는 아무리 해도 꼬부랑 글씨라 잘 모르겠단다.^^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워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지만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어디 밤을 새워 시험공부 하는 것이 쉬우랴? 어느 덧 잠든 자신을 깨우는 아내의 손길에 다시 일어서 펜을 잡아보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잠에 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지만  늦둥이 초등학교 6학년 막내아들과의 경쟁(?)에서 안 지려고 열심히 공부한단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 학사모를 쓰고 싶은 게 꿈이라고 한다. 내가 예상하건데, 아마 분명히 학사모 쓸 것이다. 왜? 그것은 석씨의 공부에 대한 열정. 석씨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 지는 그에 얽힌 유명한 일화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농사꾼이다. 농사일이 바쁜 농번기, 하루해가 짧다. 일에 정신없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업시간.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 어느 날은 농사일을 하다 말고 수업시간에 늦을 것 같아 학교 운동장으로 트랙터를 몰고 등교해 일대 화제를 일으키기도. 또 한 번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수업을 듣기 위해 목발을 짚고  학교에 왔단다.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는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한 분들이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공부에 대한 열정! 그래서 나는 이 분이 반드시 자신의 꿈인 학사모를 쓸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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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기 위해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태권도를 접한 박현미 관장. 꿈나무 시절 도 대표로 선발돼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은메달까지 받았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좌절의 쓴 맛을 보게 된다.


태권도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님의 격려와 좋아하고 사랑하는 태권도를 잊을 수가 없어 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도 포기하고 태권도 보급과 후배 양성을 위해 태권도 도장을 직접 차렸다. 하지만 '태권도 관장이 여자'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또다시 많은 시련을 주었다. 모든 체육관의 관장이 남자인 현실에서 여자가 체육관 관장이라는 사실, '여자가 운동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주위의 편견과 시선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다.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고 싶었다. 열심히 땀 흘렸다. 열심히 노력했다"  


박 관장은 그렇게 좌절과 편견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섰다. 처음 꺼려하던 학부모들도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강인함이 어우러진 박관장에게 격려와 믿음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결실로 그녀의 어린 제자들은 벌써부터 꿈나무로서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전국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좌절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나를 지키는 것!

가르치는 어린 꿈나무들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는 것!

설 자리 없는 여자 스포츠 후배들에게 자신을 통해 용기를 주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부지런히 땀을 흘린다."


박현미 관장! 그녀의 꿈과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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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분을 기억하시는 분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월에 '1평 담뱃가게 아저씨의 아름다운 나눔 사랑'이라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윤회(51)씨입니다. 기억하시거나 다시 읽으신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그는 장애인입니다. 92년,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다리가 썩어가는 버거슨 병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단했지요. 이후 교통사고까지 당해 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의족을 한 아픈 다리와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주위의 도움으로 얻는 1평도 채 안되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하루 1-2만원 정도 수익금에서 조금씩 모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를 했고. 그 글을 사연과 함께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글 참조:1평 담뱃가게 아저씨의 아름다운 나눔 사랑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81510

 

기부 사연 좀 더 알고 보니, 자신은 라면 먹으면서 그 돈 아껴서 어려운 이웃 위해 기부를...


그런데 얼마 전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지난 번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는데, 그동안 한 3년 동안 라면 위주로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아픈 다리 때문에 밥 먹으로 가기 불편한 것도 있지만, 한 끼 식사 값을 아끼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답니다.


병원에서는 빈혈 진단이 나왔는데, 라면만 드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찾아간 19일에도 점심으로 라면을 드셨다고 하네요. 그렇게 모은 돈, 자신도 장애의 몸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쉽지 않고, 치료도 계속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지만 그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꺼이 기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8년째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장학금으로도 기부했고,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의 생활비로도 보태졌지요. 아동들을 위한 사회복지 법인에 정기적으로 후원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19일에도 4개월 동안 모은 15만원 정도를 사회복지 법인에 후원했는데...액수가 너무 적어 부끄럽다지만 15억이 이 보다 더 가치 있을까요?

 

언제 또 다시 돼지저금통이 꽉 찰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기부할 거라고 합니다.


다시 만난 담뱃가게 아저씨. 여전히 하루 벌이 중 일부를 돼지 저금통에... 욕심 없는 그가 유일한 소망이 있다는데?

 

                           




아저씨가 컴퓨터가 필요한 이유는, 불편한 몸 때문에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1평 남짓 가게에서만 지내야 하니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는 단순한 컴퓨터일지 모르지만, 아저씨에게는 불편한 몸과 다리가 되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지요.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웃으시며 "네에~" 라는 대답과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아저씨의 간절한 마음, 그리고 외로움 같은 것이 묻어 있음을 많이 느껴졌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지금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돼지저금통, 기부하지 않고 본인에게 쓴다면 2년 정도만 모으면 살 수 있을텐데...


불편한 다리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의 공간이 되어 줄 노트북을 갖는 것이 소망인 아저씨! 하지만 그렇게도 소원인 컴퓨터를 차마 사지 못하는 건, 그 돈을 이웃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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